Record.

죽음.

2016. 5. 19. 01:15

#1

 나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겁고 힘겹게 다뤄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과 나 사이에는 아주 얇은 막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언제든지 찢어지고 그것이 침범해 올 수 있는 얇고 투명한 경계.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바로 곁에서 항상 함께하고 있다. 오늘만 해도 나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을 수도 있었고, 기어가 제대로 들지 않았던 아침 버스에서 사고로 죽을 수도 있었으며, 낡고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1호선을 타고 오다 열차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죽을 수도 있었다. 지나가던 승용차의 기계적 결함으로 재수없게 치여 죽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좋아서 오늘 살아남았고 지금 타이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의 누군가는 운이 나빴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내일도 오늘처럼 운이 따라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2

 밤 늦게 귀가할 때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안에 칼을 든 괴한이 있지는 않을까 상상한다. 때로는 맞은편에서 오는 사내가 혹시 나를 해코지 하지 않을까 일부러 두어발자국 간격을 두고 걷는다. 어제는 앞서 걸어가는 술 취한 아저씨와 거리를 두기 위해 화단을 사이에 둔 자전거 도로 위를 걸어갔다.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걸을까 싶었지만 힘 없이 걷는 여자를 타겟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금방 떠올라 불안한 나머지 아침 등교길처럼 빠르게 걸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오늘의 나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으나, 서글프게도, 내가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은 나의 경계심 때문이 아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3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곳에 함께 서있는 여성들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 나를 스쳐 지나간 무수히 많은 여성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모두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 갔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소망에 불과하다는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