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2019.10.21 - 10.24 Rome & Brussels

2020. 3. 24. 02:41

칩거생활 3일차. 심심하니 지난 해 다녀왔던 로마와 브뤼셀에 대한 추억팔이를 해보려 한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지인을 만나기 위해 덜컥 비행기표를 끊었다. 물론 목적지만 없을 뿐이지 어딘가 가고싶었던 건 맞다. 

아무튼 이탈리아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데 덕분에 가보게 되었고, 그 후에 또 갔다오긴 했는데 참 운이 없다고 해야할지, 좋았다고 해야 할지...... (이것은 다음 포스트에 쓰겠다)

 

로마로 가는 비행기도 연착이 되었던가?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이미 숙소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엔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로마는 분위기가 좀 살벌하지 않았냐, 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는 밀라노에 가기 전이라 별로 와닿지 않았다. 갔다오고 나니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사실 이탈리아는 유럽권에서도 특히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어두운 시간에 도착하다보니 긴장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숙소는 북역에서 걸어서 5-10분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역 앞에 치안이 그리 좋지 않다는 글을 보기도 했다. 게다가 (당연히) 낡은 건물과, 종종 보이는 어지러운 그라피티와, 간간히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에 런던과는 다른 낯설은 분위기, 숙소로 가는 길에 작은 슈퍼마켓과 식당에 이민자들로 보이는 현지 사람들이 무리지어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으니 솔직히 조금 쫄았다. 그래도 밖에 나와서 1년 조금 넘게 사는 동안 느낀 것이 있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하고 씩씩하게 걸었다. 정말로, 좀 낯설을 뿐이지 그냥 평범한 사람들 사는 곳이다. 물론 조심조심 다녀야겠지만 그렇게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고보니 그 부근은 이주자들이 많은 곳이고, 특히 아시안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한중일을 포함해서 인도나 아랍권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았다. 좀 웃기지만 첫 날 도착하자마자 한국분이 하는 식당에서 양꼬치를 먹었다. (거의 1년 넘게 못 먹었고 그 후로 여태까지 못 먹었다!) 눈물나게 맛있었다. 창 밖에서 지나가다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처음엔 레이시스트인가 했는데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경계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냥 바깥에 걸린 메뉴를 읽었던 것 같았다.

 

 

 

 

둘째날 오전에는 친구들이 추천한 대로 바티칸 투어를 했는데 사실 잘 기억이 없다. 그냥 사람이 매우 많았고, 매우 많았는데 들어보니 이건 적은 편이라고 해서 좀 충격을 받았고... 딴건 몰라도 라오콘상은 봐야하지 않나 싶어 가까이 가서 봤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아테네 학당도 생각보다 작은 편이었고,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방도 되게 작았다. 사람이 많아서 더 작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설명이 그렇게 부실하지도 않았지만 반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고, 나머지 반은 별로 안 궁금한 내용이라 엄청 흥미롭진 않았다.

바티칸 시티 안에서 우편을 보내면 특별한 소인을 찍어주는 것이 굉장히 인기있다고 들었는데, 해보고 싶었지만 투어가 끝난 뒤에는 사람들에게 너무 치여서 완전히 지쳐있었다. 더 이상 여기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배도 고프고, 그냥 대성당 밖에서 사진 몇 번 더 찍다가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10월 말이라 런던은 이미 날씨가 최악인 계절로 향하고 있었는데, 로마는 여전히 여름날씨라 특히 좋았다. 내내 비도 오지 않았고, 햇볕도 오래 서있으면 뜨거울 정도로 좋았다. 선글라스를 안 가져온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일부러 따뜻한 날씨를 예상하고, 출발할 때 트렌치코트만 하나 걸치고 왔는데 그마저도 필요하지 않았다. 음식도 아무거나 먹어도 웬만큼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고, 사람들도 대체로 친절해서 굉장히 좋았다. 만 하루만에 런던에 돌아가기 싫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정말 맛있었던 까르보나라. 카푸치노는 말할 필요도 없고.

Ai Balestrari In Prati, Piazza dell' Unità, 27, 00191 Roma RM, Italy.

 

 

 

 

그리고 이 날 저녁에 지인을 만났던 것 같고, 오래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너무 반갑고 좋았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두어시간 떠들었던 것 같은데, 저녁인데도 날이 따뜻하고 너무 좋았지... 젤라또 하나씩 끝내고 헤어진 다음 숙소로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서 스페인광장에 갔다. 가서 버블티를 먹고, 호스트가 추천해준 티라미수도 사고 돌아왔던가. 혼자 사진을 찍고 있으니 똑같이 혼자 여행중인 여성분이 사진을 부탁해서 내 사진도 부탁해서 몇 장 찍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이미 가게들은 거의 다 닫아서 그냥 어슬렁거리다 돌아왔다. 아, 직접 만든 건면 파스타를 파는 곳에서 납작하고 동그란 동전같이 생긴 파스타를 사 왔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이탈리아에는 이런 가게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서 좀 부러웠다. 이 섬나라는 대체 뭐가 문제길래 맛이 하향평준화되어있나...

 

 

 

 

 

 

셋째날에는 시간맞춰 어디에 모여야할 일이 없다보니 느즈막히 나와서, 숙소 근처 스낵바에 들렸다. 여기 사람들은 바에서 커피를 바로 주문해서, 그 자리에서 단번에 마시고 이동하곤 하더라. 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작은 라떼 한 잔을 끝냈다.

이 날은 투어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사실 사진 찍은 곳들 중에 직접 들어간 곳은 하나도 없다. 굳이 들어가서 봐야하나 싶기도 했고, 줄을 서서 오래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깝기도 했다. 로마에서 투어버스를 타는게 특히 좋았던 점은, 유명 관광지들의 스케일이 매우 크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기 좋다는 것이다. (사파리 버스같다.) 버스 안에서 바람을 쐬면서, 콜로세움에 들어가기 위해 뙤양볕 아래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들어가서 직접 본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마어마한 인파에 끼어 열심히 설명을 듣고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샅샅이 돌아다니는 경험은 바티칸에서 충분했던 것 같다.

 

 

 

 

(Hotel Imperiale, Via Vittorio Veneto, 24, 00187 Roma RM, Italy.)

 

 

 

이 날은 베네토 거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너무 좋았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을 따라 호텔과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데, 가로수 잎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빛이 새어들어온다. 유리로 된 파빌리온이 여럿 있어 야외에 앉아있는 것처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이날도 파스타를 먹었는데, 뇨끼도 와인도 너무 맛있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보니 이제 레스토랑에 홀로 들어가는 것도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꽤 여럿 있어서 마음이 더 편했다.

 

 

이 다음에 보고싶은 전시를 하는 갤러리에도 가고, 그 주변을 설렁설렁 동네 구경하듯이 걸어다녔다. 걷다보니 판테온과 트레비분수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거기까지도 걸어가게 되었다. 결국 웬만큼 유명한 곳은 다 돌아다닌 꼴이 되었다. 

 

 

 

 

 

 

 

 

브뤼셀은 로마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날, 경유로 10시간 정도 머물렀던 것이 전부다. 사실 뭐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브뤼셀 명물 감자튀김과 와플, 초콜렛 등을 먹으려고 했는데 거의 다 먹었던 것 같고. 그거 말고는 그냥 걸어다니면서 예쁜 가게 구경하고, 사진 좀 찍고, 멍때리다가 마그리트 미술관이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서 부랴부랴 보고 나왔던 기억이 전부다. 날씨는 정말 좋았는데 북쪽으로 오니 좀 쌀쌀했고,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지만 로마만큼은 아니었고 가격도 좀 더 비쌌다. 사실 로마에서 예산보다 조금 더 돈을 써버려서 여기선 그냥 간식 좀 사먹고 말았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보다 더 날씨가 별로일(...) 런던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좀 착잡한 기분이었던가. 3박 4일은 참 짧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갔던 로마의 스낵바와 식당을 찾아봤는데 구글맵에 'Temporarily Closed'라고 나오는 것이 참 슬프다... 아마 대부분의 식당이 그런 것 같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게 내 영국생활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아직도 여기서 미적대고 있다가 칩거생활까지 하고있다. 그리고 그 사이 여행을 또(!!) 이탈리아로 다녀왔다. 앞으로 있었을 여행은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취소되었지만...... 빨리 상황이 안정되어서 5월에는 어딘가 짧게 다녀오고싶다. 진짜로 요 며칠 날씨가 좋으니까 억울하기까지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