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쯤 됐나 싶었더니 이 모든 일이 3-4일 사이에 일어난 것이었다ㅋ 정말 어이가 없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특히나 오늘은 기분이 아침부터 널뛰기를 반복해서 더욱 영화같았다.
결론적으로는 오후 늦게 정부에서 음식점을 위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의 영업을 중지할 것을 알렸고, "Non-essential" 에 당연히 우리도 포함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우리 막내 매니저와 함께 모든 직원들이 김칫국을 마셨는데 알고보니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도로 시무룩해짐ㅋㅋㅋ) 하지만 최소 일주일은 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고, 예상대로 늦은 저녁 회의 끝에 영업을 정지할 것으로 결정이 났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로부터 걱정하는 연락이 연달아 와 있어서 더욱 심란한 상태였다. 모두가 비행기표를 급하게 구해 이 나라를 뜬다는 이야기를 하루에 한두 번 씩 듣느라 안 그래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는데 알람이 잔뜩 떠 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곧 돌아갈 예정인 동료의 이야기를 종일 듣고 있으니, 두 달 뒤의 티켓을 끊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인가 짜증도 나고 잔뜩 예민했다. (그래서 주위을 분산시키려고 열심히 스도쿠를 풀었다... 매우 도움이 되었다ㅋ)
계속 머물 예정인 사람들도 꽤 있다. 하지만 매장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으니, 오전부터 낮까지 내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다행히 저녁 늦게 정부 공지에 이어 매장을 닫는다는 공지도 내려오니, 이제 외출하는 횟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어 이제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사실 매장 안에 있는 것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데, 튜브와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지만, 레이시스트에게 크고 작게 뭔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위협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의문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당신은 내 옆에 안 앉았음 좋겠는데요.) 아무튼 내일은 집 밖으로 굳이 안 나가도 될 것 같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어제 오늘은 손님 수보다 직원 수가 많다고 우리끼리 농담을 하고 놀면서 설렁설렁 일했다. 오늘은 특히 한국인 직원들이 거의 다 나온 날이라, 헤어지기 전에 단체로 사진을 찍으면서 '제발 내일은 보지 맙시다~'하고 헤어졌는데 곧 현실이 되었다. 정말 한 치 앞을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2주간의 휴가가 생기니, 항공편 예약한 사이트에 전화해서 티켓 변경이 가능한가 문의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이 싹 사라졌다. 심지어 원래 예정했던 대로 5월 끝자락에 돌아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까지 생기는데, 또 알 수 없다. 아마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다음주를 무사히 버티고 상태가 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인다면 모를까. 더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고, 기적적으로 나아질 수도 있는 것이고.
며칠 사이에 모든 일이 다 엎어지고 취소되어 버렸다. 사실 다음 주에는 친구와 마실 나가는 김에, 여전히 캔터베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를 잠깐 보려고 했다. 오늘 중으로 연락해보려고 했는데 먼저 메세지가 와 있어서 고마웠다. 안부를 되물으면서, 좀 상황이 나아지면 보러 가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내 트렌치코트는 여전히 방에 걸려 있고, 언제 입고 나갈런지 모르겠다. 지난 주에는 엔젤 근처에 예쁘고 맛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많다는 얘길 듣고, 곧 가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틀렸다. 그리니치에도 한 번 더 가기로 했는데 못 가게 되었다. 파리는 당연히 못 갈테고...... 취소된 일들을 줄줄이 쓰고 있자니 조금 더 슬퍼지네.
봄이고, 이제 날이 좋아질 일만 남았는데 아쉽다. 어쨌든 이미 귀국일은 정해졌고, 그 전에 상황이 조금 나아진다면 좋겠다. 4-5월의 런던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덧)
어제는 종일 우중충하고 비가 왔지만, 오늘은 날씨가 이렇게 좋았는데 거리에 사람이 정말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밀라노에서 마지막 날, 거리가 한산했던 것이 착각이나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꽤 심각한 분위기라 그랬던 것이라는 걸...... 딱 준봉쇄 수준의 규제가 시행되기 직전의 런던 분위기(최근 며칠)와 똑같았다. (그리고 곧 봉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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