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출국이므로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될 것 같다. (저녁 비행기라 해 지는 것은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며칠이나 지내다 가는 것인가 궁금해서 계산해 봤더니 놀랍게도 떠나는 날이 딱 601번째 날이 된다. 1년 반이 조금 넘는 시간인데 날짜수로 세어 보니까 꽤 오래 지낸 느낌이라 신기하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산책 메이트를 만나고, 두고 갈 물건 중 쓸만한 것들을 나누어 드렸다. 지난 주부터 안 들고 갈 책들을 하나씩 드렸는데, 오늘 드린 책을 제일 좋아하신 것 같아 흐뭇했다.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최근에 듣고 있는 팟캐스트와 드라마를 같이 추천해드렸더니 범죄스릴러로 장르가 큐레이팅되어 있더라.ㅋㅋ 마지막으로 테이크어웨이 케밥을 나란히 사들고 헤어지면서 '집에서 페인트칠 하는 과정 보내드릴게요~'하고 헤어졌다.
오늘이 누군가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라, 어제 저녁에 미리 친구들에게 줄 카드를 써서 같이 부탁을 드렸다. 떠나면서 따로 메세지를 보낼까 말까 조금 고민이 되는데, 도착하고 나서 연락을 할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제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해서 굉장히 안타깝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별 건 아니지만 조그만 선물을 남겼는데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가을쯤 한국에 놀러오고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올해는 좀 힘들더라도 나중에 오게 된다면 꼭 연락 해 주었으면. 그냥, 마무리가 참 어설프게 되었는데 순조롭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참 이상하다.
중형 캐리어 하나와 소형 캐리어 하나에 모든 것을 쑤셔 넣는 것에 성공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고, 추가 비용이 나올지도 몰라서 좀 걱정이 되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택시도 미리 예약해두었고, 내일 오전에는 마지막으로 조금 멀리 나갔다가 올 생각이다. 4주 동안 발로 걸어갈 수 있는 범위에만 머물렀더니 내가 이 도시에 있는 게 맞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장소들은 이 동네가 아니니까.
며칠 전에도 썼던 것 같은데 별로 슬프진 않다. 2주 전에 남들 떠나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떠났다면 많이 슬프고 아쉬웠을 것 같은데, 지금은 칩거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ㅋㅋ 이스터 연휴까지는 시간도 엄청 느리게 가는 것 같았는데 화요일부터는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이제 마지막 남은 11시간 비행만 잘 버티면... 다시 2주의 자가격리를 해야 하지만 그나마 좀 낫겠지ㅠㅠ
문제는, 이미 한달 동안 락다운을 겪었더니 요리에 진저리가 난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더 만들어 먹기 싫을 것 같다. 이미 파스타도 오지게 많이 먹었다. 밥은 원래 즐겨 먹지 않는다(...) 매번 배달을 시켜먹기도 그렇고,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방 안에 쌓여 있을 택배상자들뿐......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친구가 보내준 택배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아서 집주인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냥 내일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가능성 없어 보이지만... 런던도 좋지만 캔터베리가 조금 그립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려고 했는데, 결국 가지 못 해서 더욱 아쉽다. 졸업식으로 방문했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요즘은 거의 늘 창을 열어두고 있다. 지금도, 바람이 시원해서 참 좋다. 다른 사람들은 이 나라 날씨가 구질구질하다고 해도 나는 이곳의 날씨와 공기가 대체로 좋았는데, 그건 많이 생각나고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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